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드디어 가을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가을의 하늘은 파란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다른 계절에 비해 훨씬 더 높고 눈에 띄게 푸르다. 우리는 매해 이맘때쯤 선명한 에메랄드블루 빛의 하늘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어떻게 여름날의 평범했던 하늘이 빛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자아내도록 탈바꿈하는 것일까?

하늘이 푸른 과학적 원리는 ‘빛의 산란’에 있다. 현종오‧김혜경 저자의 책 ‘색을 요리해 볼까?’에서는 산란이란 태양 빛이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 그리고 먼지 등과 같은 작은 입자들과 부딪히면서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햇빛이 프리즘에 통과되면 우리는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가시광선 영역의 색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여러 색깔 중 파장이 가장 짧은 파란색과 남색 그리고 보라색 등이 가장 많이 산란한다. 푸른 계열 빛의 산란은 파장이 긴 빨간색의 6배에 달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가 파란 하늘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파란 빛을 띠는 하늘이 왜 가을에 유독 더 청명하게 보이는 것일까.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9월 이후 차고 건조한 기단이 다가오며 선선한 날씨를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이동성 고기압’의 형태를 띠는 양쯔강 기단의 영향을 받는 대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때 공기 중의 수증기와 먼지는 다른 계절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지난 1일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한 달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24일가량 ‘좋음(0∼30㎍/㎥)’ 수준이었다고 발표했다. 때문에 수증기나 먼지 등과 적게 부딪히면서도 많은 산란이 가능한 파란빛은 다른 색에 비해 더욱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또한 가을하늘의 진한 파란빛이 가을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단풍’을 만나면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그 비밀은 단풍잎의 빨간색 그리고 은행잎의 노란색과 파란색의 관계에 숨어있다. 빨간색과 노란색은 파란색과 반대대비를 이룬다. 반대대비는 보색대비와 유사한 개념으로 자칫 착각하기 쉽지만 보색 관계의 색들은 번잡스러운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이에 반해 반대대비는 성격이 반대되는 색들의 조합이지만 그것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유사한 색들이 가지는 매력과는 또 다른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한국색채학회의 김지혜‧박연선 저자의 논문 ‘2색 배색을 통한 색채 감성 연구’에서 보색 관계에 놓여있는 노랑-보라는 부조화 인상을 자아냈고 빨강-초록의 경우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반대관계에 있는 노랑-파랑 조합과 빨강-파랑 조합은 모두 피 실험자들에게 유의미한 조화 인상을 얻어냈다. 가을의 상징에 있어서 양대산맥으로 손꼽히는 하늘과 단풍이 이처럼 훌륭한 시각적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을이 마냥 생기 돋고 활기찬 시기는 아니다. ‘가을을 탄다’는 이유로 괜시리 고독과 쓸쓸함 그리고 외로움을 느껴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을은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계절 설문에서 약 44%를 차지하며 매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곤 한다.

가을에 대한 많은 이들의 애정은 가을하늘을 빼놓고 논할 수 없을 것이다. 푸른빛을 한층 더한 하늘은 가을을 타는 이들의 마음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고 식탁의 풍요뿐만 아니라 마음의 풍요로움까지 선사한다. 김석규 시인은 작품 ‘시월하늘’에서 가을의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높고 맑고 푸르러서 하늘을 한 만 평쯤 장만하고 싶다며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챙겨 들고 나가 봐야겠다고 말한다. 재치가 엿보이는 이 표현은 시월하늘을 사들여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을 정도의 푸른 하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또한 하늘을 그저 창밖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당장 뛰쳐나가 가을의 거리를 거닐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이렇듯 가을은 실내에 갇혀 가만히 앉은 채 싱숭생숭한 생각에 잠겨버릴지도 모르는 우리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빛의 산란과 단풍의 절경이 가져온 끝도 없이 다채로운 가을 속에 힘껏 빠져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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