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탄생 90주년을 맞이한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지난 2일까지 6일간 한국에 머무른 미키마우스는 내한한 팝가수들과 견주어 봐도 뒤지지 않을 만한 빽빽한 일정을 소화했다.

미키마우스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주최한 ‘산타 원정대’ 행사에 참석해 아이들의 1일 산타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미키 인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팬 미팅에는 엄청난 성인 팬 인파가 몰리며 연령대를 막론하는 미키마우스의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미키마우스의 매력에 빠진 ‘어른’들과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동심을 찾아 떠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키덜트, 청년과 중년을 막론하는 하나의 문화

‘키덜트’.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써 마치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지고 이른바 ‘장난감’ 등을 좋아하는 어른을 이르는 신조어다. 과거에는 장난감이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존재했다. 실제로 장난감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물건’이라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이들이 자라 성인이 된 현재는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김령 씨는 요즘 ‘레고’를 수집하고 조립하는 것에 푹 빠져있다. 김 씨는 어렸을 때부터 블록 장난감을 유독 좋아했었고 고등학생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모님에게 값비싼 레고 세트를 선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레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하지만은 않아 레고를 두 달에 한 개씩만 구매하고 있다는 그는 새로운 레고를 사고 싶을 때마다 레고 조립 영상을 찾아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매우 적어졌다”며 “그때마다 레고를 조립하면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투자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레고의 매력을 설명했다. 장난감에 있어서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김 씨는 “키덜트라는 단어를 젊게 산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본인을 포함한 키덜트족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김 씨의 레고 사랑에 공감한다는 나정훈 씨는 프라모델 수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다. 나 씨는 모델에 따라 적게는 1만 원대부터 일반적으로는 20만 원대까지 거래되는 프라모델을 벌써 한쪽 벽의 장식장을 가득 채울 만큼 수집했다. 그는 멋지게 완성된 프라모델의 모습에 반해 본인도 프라모델을 완성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와 같은 취미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두 아들과 프라모델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아들들과 달리 본인은 유년 시절 값비싼 프라모델을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았다는 나 씨는 “프라모델을 통해 동심을 되찾을 수 있으며 어린 시절 선망했던 것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가질 수 있다는 점이 기쁘다”고 덧붙였다.

신승윤(사회‧2) 학우는 벌써 12년째 ‘포켓몬’이라는 캐릭터와 반평생을 함께하고 있다. 굿즈 구매와 애니메이션 시청 그리고 포켓몬 게임을 두루 즐기고 있는 신 학우는 “인형이나 피규어를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 포켓몬 세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나잇값을 못 한다’, ‘유치하다’, ‘이제는 공부에 집중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라는 등 주위의 질책을 숱하게 받았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신 학우는 “성인임에도 포켓몬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포켓몬을 좋아하는 제가 성인일 뿐이다”며 “키덜트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자신의 취미를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강석희 씨는 성인이 된 직후 ‘슬라임’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미디어를 통해 슬라임을 처음 접한 강 씨는 슬라임을 시각과 촉각 그리고 청각적 면에서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지만 슬라임이 있다면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다”며 “슬라임이 가져다주는 그 자체의 재미와 어릴 때의 향수가 더해지면 슬라임의 매력은 배가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오늘날에는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완구류 장난감과 만화영화 그리고 캐릭터 굿즈 등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훌륭한 취미생활로써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키덜트 사업의 성공 신화

키덜트 문화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키덜트족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도의 전략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릭터 산업 유행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카카오 프렌즈’는 애당초 어린이들이 아닌 성인들을 겨냥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입지를 굳혀갔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매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니 가습기와 차량용 방향제 그리고 타월세트 등이 그 예시다.

또한 일본에서 어린이들의 소꿉장난용으로 생산된 ‘포핀쿠킨’은 유명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으로 성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YouTube’에 포핀쿠킨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제리팝’이라는 크리에이터는 포핀쿠킨을 이용해 초미니 음식을 만드는 콘텐츠로 60만 구독자를 돌파했다. 제리팝은 본인의 구독자에서 성인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으며 ‘성인임에도 포핀쿠킨 영상을 끊을 수 없다’는 내용의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대규모 기업처럼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거나 유명인에게 직접적으로 홍보를 부탁할 수 없는 개인 자영업자들은 주 타겟층인 키덜트족을 어떻게 공략하고 있을까?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키덜트 소품샵 ‘히얼유아’의 사장 박진솔 씨는 학창시절 바비인형을 접한 이후 장난감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가게를 처음 차리면서 내놨던 소품들 대다수는 본인 방을 가득 채웠던 물건들이었다. 박 씨는 “언젠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가게에서 나와 비슷한 물건을 좋아하는 이들을 마주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히얼유아’에는 박 씨의 애정이 묻어나는 손길들로 가득하다. 그는 점토를 이용해 만든 피규어와 직접 제작한 열쇠고리 그리고 자신의 일러스트를 이용한 편지지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가게 내부의 인테리어 역시 본인이 가담했으며 벽과 바닥에는 직접 그린 벽화들을 볼 수 있었다. 박 씨는 “내가 직접 그린 벽화와 직접 만든 소품들이 히얼유아의 개성이다”며 “이런 정성들이 손님들에게 닿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고 설명했다.

수원시 권선구 소재의 슬라임카페 ‘슬라임크루’의 사장 임경순 씨는 슬라임을 좋아하는 그 어떤 고객들보다도 슬라임에 대한 열정이 뒤지지 않는다. 슬라임을 ‘공부’한다고 표현하는 임 씨는 “어떤 재료와 비율로 슬라임을 만드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천지 차이다”며 “그만큼 슬라임에 대한 기본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손님들에게 만족스러운 슬라임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슬라임을 만드는 데 물풀과 붕사 등의 재료가 건강에 유해할 것을 걱정하는 손님들을 이해 카페 내부 인테리어는 전부 친환경 페인트를 활용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키덜트, 이제는 어엿한 하나의 사회현상

‘키덜트’라는 개념은 어떤 사회 모습 속에서 등장했으며 규정돼 위의 내용과 같이 현재 우리 곁에 만연하게 된 것일까. 많은 인류학자는 놀이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놀이를 위한 장난감은 오랜 과거부터 어린이들의 곁을 지켰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유물 발굴 현장에서도 인형과 목마와 같은 장난감이 등장했다. 즉 장난감은 그 형태가 변화할 뿐 언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장난감을 소비하는 연령대가 매우 폭넓어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김한상(사회) 교수는 “단순히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었던 1980~199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세대가 현재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성인층으로 성장한 것이다”고 예상했다. 이전 세대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소비를 마음껏 누릴 만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컬러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고 만화영화가 빛을 발하던 1980년 무렵 만화영화를 챙겨보던 ‘어린이’는 현재 여전히 만화영화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는 ‘성인’으로 자랐을 것이다. 또한 김 교수는 “이와는 정반대로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결손으로 인해 오히려 성인이 된 후 키덜트 문화를 추구하게 됐다는 설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금까지 설명한 ▲레고 및 프라모델 조립 ▲만화영화 시청 ▲슬라임 제작 ▲캐릭터 굿즈 구매 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키덜트 예시가 있다. 바로 최근 대학생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방문 수업 학습지’를 푸는 행위다. 그들은 각자의 지적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문제들을 망설임 없이 몇 장이고 풀어내고 그렇게 풀이한 문제들의 정답을 모두 맞히는 자신을 보면서 현재의 무능력한 스스로에게서 잠시나마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 4년 차에 접어든 아무개 씨는 얼마 전 방문 수업 학습지의 일종인 ‘구몬학습’을 신청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문제집을 구입해 풀고 있다. 아무개 씨는 “삶이 각박하고 힘겨울 때마다 자유롭고 부담이 적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며 “학습지와 문제집을 풀면서 은근한 성취감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이와 같은 조금은 극단적인 키덜트 사례에 대해 ‘낙인 효과’를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낙인 효과란 대상이 되는 인물이나 집단에게 그들을 칭하는 ‘낙인’을 부여하여 그들을 특정한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낙인 효과에는 낙인을 지정하는 이들의 가치판단이 반영돼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학습지와 문제집을 푸는 키덜트족을 ‘어덜트’가 됐음에도 ‘키드’의 성향을 채 버리지 못한 채 품고 있는 미성숙한 존재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이들 역시 키덜트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점에서 만화영화를 시청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주지혁(극동대학교 방송영상학부) 교수는 “키덜트족이란 피터팬 증후군과 같이 어른의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유아적 감성을 지닌 성인이라고 해석했다”며 “그들의 성향은 심리적인 병리 현상이 아닌 기성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성과 창조성 그리고 개방성을 추구하는 바람직한 감성이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든, 어린 시절에 충족하지 못한 욕구를 이후에 채우고자 하는 것이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버거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든 ‘키덜트’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구분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남들에겐 유치해 보이고 제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당신의 취미는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당신에게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자 즐거움이 되곤 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당신의 어린 시절을 누리며 동심을 찾아 떠나라, 키덜트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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