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까지 MBC 뉴스데스크로 주말 저녁을 책임졌던 정다희 전 아나운서를 만났다.

실제 TV에서 봤던 아나운서를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Q.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아나운서의 꿈을 꾸셨나요?

A.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는 스타 아나운서들이 많았어요. 김주하와 문지애 그리고 백지현 아나운서와 같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빛을 발하는 시기였죠. 이때 저도 ‘나도 아나운서를 하고 싶다’는 이런 막연한 꿈을 가지고 학교 방송반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많은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영어 교사라는 진로를 염두에 두고 영문과에 진학했어요. 하지만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도 아나운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죠. 그래서 마지막 학기에 도전해서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Q. 대학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나요?

A. 학교에서 저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집이랑 학교랑 되게 가까웠거든요. 그래서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가고 그랬죠. 그리고 학생 때는 여행을 가고 싶어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학기 중에 과외 아르바이트로 바짝 돈을 벌고 방학 때 여행 가서 탕진하는 (웃음) 그런 친구들 있죠? 이렇게 저는 열심히 수업 따라가고 학교 끝나면 과외 가는 그런 학생이었죠.

 

Q.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아나운서라는 꿈에 다시 시작한 만큼 재학 중에 아나운서 관련 준비를 못 한 점이 아쉬우시겠어요.

A. 저도 아쉬운 부분이긴 해요. 만약 방송 관련 활동을 했다면 더 빨리 붙었을 수도 있어서 아쉬운 것 같아요. 저와 같이 MBC 들어온 여자 친구들 보면 학교에서 홍보대사 모델 활동을 한 친구도 있고 기자단 활동을 한 친구도 있고 보통 아나운서와 연관된 활동들을 많이 했더라고요.

 

Q. 대학 시절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A.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막연하게 아나운서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용기가 샘솟았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찾아서 연락을 해봤죠. 한 번 상담이라도 받아보려는 마음으로. 이때 ‘아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영문과를 전공해서 할 수 있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상담부터 받는데 생각보다 채용정보가 많아 조금 길이 보이더라고요.

 

Q. 아나운서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다면?

A. 저는 아나운서 준비를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은 부분이 스터디였거든요. 취업스터디 하듯이 아나운서 지망생끼리 모여서 휴대폰으로 카메라 테스트처럼 찍어준다던가 필기 공부를 같이한다던가 하는 스터디가 있었어요. 이게 도움이 많이 됐죠.

그리고 너무 지루한 이야기이긴 한데 열심히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좋은 거죠. 사실 아나운서 시험이 무슨 고시처럼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거든요. 매회 당시 트렌드에 맞춰서 시험형태가 바뀌고 그해에 방송국에서 원하는 아나운서상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준비할 때 길을 잃을 수가 있어요. 이때는 정말 사소하게 어학 성적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서 발성 연습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아나운서처럼 만든다던가 다양한 성향의 뉴스들을 보면서 요즘의 트렌드를 파악한다던가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서 내 생활 속 일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그럼 어느 순간 내 꿈에 가까워져 있는 것 같아요.

 

Q. MBC 아나운서는 첫 아나운서 도전에 바로 되신 건가요?

A. 아니에요. 지상파 시험은 공고가 잘 안 떠요. 그래서 작은 방송국이나 케이블 같은 곳에 지원했죠. 서류 탈락하는 곳도 있었고 1차 카메라 테스트에서 탈락하는 곳도 있었죠. 그래서 ‘난 안 되겠다’ 싶은 시기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KBS 스포츠 채널 시험을 봤어요. 그때 4차 최종면접까지 올라서 최후 4인 중 1명이 됐죠. 여기서 저의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다음에 본 시험이 MBC였죠.

 

Q.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방송국을 선택하는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나요?

A.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방송이 많이 있잖아요. 예능이나 시사교양 그리고 뉴스나 스포츠 등등. 자신이 어떤 방송을 하고 싶은지 신중히 고민해서 결정한 부분과 크게 벗어나는 방송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처음 각오는 ‘크고 작은 방송국 따지지 말고 아무 데나 해보자’였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경마방송을 하는 특이한 방송국에 처음 입사를 하면 경마방송과 관련된 이미지가 생겨요. 그러면 나중에 자신이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송국의 이미지와 안 맞을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Q. MBC 입사 경쟁률이 굉장히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경쟁률을 뚫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근데 제 추측과 합격 후 심사 위원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처음 카메라 테스트를 10명씩 들어와서 진행하거든요. 그렇게 10명이 들어오는데 제가 눈에 확 띄었대요. 제가 키가 유난히 큰 것도 아니고 눈에 확 띌만한 비주얼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걸음걸이나 어딘가에서 오는 당찬 기운이 느껴졌다고 해요. 그래서 ‘저 친구는 왜 이렇게 당당하지?’ 하는 생각으로 저를 보신 것 같아요. 굳이 꼽자면 당당한 걸음걸이와 표정과 같은 모습이 비결이었던 것 같아요.

 

Q. 아나운서의 자질은 무엇일까요?

A. 이 부분은 저도 많이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우선 아나운서를 굉장히 좋은 사람이나 바른 사람의 표본으로 보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그렇기에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뉴스를 하는 앵커의 자질은 아무래도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 방송국 환경상 아직은 완전히 객관적이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에서는 제가 지켜야 하는 소신과 항상 부딪히기 때문에 아직도 아나운서의 자질에 대해 고민해요.

 

 

Q. 실제 뉴스를 진행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뉴스나 일화가 있었나요?

A. 제가 지금 딱 생각나는 뉴스는 저를 화나게 하는 뉴스예요. 유아 성추행이라던가 소방관 폭행이라던가. 이런 기사 내용을 읽으면 정말 화가 나거든요. 하지만 뉴스 진행 중에 화를 낼 수 없잖아요. 그때 화를 억누르면서 읽은 점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지향하는 앵커의 모습은 감정을 모두 배제한 냉철한 앵커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뉴스도 결국 사람 사는 소식을 전해주는 거니까 어느 정도 감정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경계가 정말 모호해요. 제가 어떤 기사를 읽으면서 미소를 띠었을 때 공감을 하는 시청자도 있겠지만 반면에 상처를 받는 시청자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도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언론인으로서 가진 신념이나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A. 제가 큰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들이 되게 많았어요. 정말 많아요. 근데 그 순간에 저 스스로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남의 눈치를 많이 봤다는 거예요. 여러 선배들에게 여쭤보면서 계속 남의 시선에서 생각했고 선택했죠.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을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그래서 꼭 자신이 꿈꾸는 언론인 상이나 내가 되고 싶은 언론인의 모습을 평소에 많이 생각해보고 그걸 어떤 환경이든 간에 지킬 수 있는 지조나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Q. 드라마 ‘미스틱’을 보면 여성 언론인이 당차고 야망 있는 역할로 나오는데 실제 여성 언론인의 모습은 드라마와 비슷한가요?

A.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성 언론인이 드라마의 모습처럼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까지도 뉴스에 남자 여자 두 명의 앵커가 나오면 남자가 메인 앵커고 여자는 서브 앵커 느낌이에요. 그리고 남자 앵커는 조금 연세가 있고 경력이 있는 분들이 나와서 정치나 경제 위주의 뉴스를 다루고 여자 앵커는 젊고 예쁘신 분들이 나와서 생활이나 사건 사고 뉴스 위주로 다루는 경우가 아직까지 대부분이죠. 많이 변화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거든요. 이렇게 여성 아나운서의 역할이 일정 부분에 국한되지 않으려면 ‘미스틱’의 김남주 씨처럼 더 당당하게 할 말은 꼭 해야 하지 않을까요?

 

Q. 아나운서는 예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예뻐야 한다는 게 지망생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 같아요. 사실 외적으로 호감을 줘야 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게 절대 얼굴의 이목구비가 예쁘고, 뚜렷하고 이런 부분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거든요. 저는 표정이나 자신감 그리고 제스처같은 부분이 호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데, 이것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웠던 케이스가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얼굴을 하나씩 고치는 사람이었어요. 충분히 예쁜데 계속 얼굴에서 답을 찾는 거죠. 그리고 아나운서 되면 카메라 마사지 받으면서 다 예뻐져요. (웃음) 그러니까 내면을 가꾸면 그게 표정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언론인 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우리 학교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상파 아나운서는 스카이를 나와야 해. 그래서 난 안될 거야’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도 사실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제가 스카이 대학이 아닌데 아나운서가 됐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요. 솔직히 왜 놀라야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꼭 스카이만 뽑았다고 해서 아주대는 안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후배들이 시작점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좋은 대학을 나온 게 아닌데’하는 생각으로 자꾸 자신 앞의 벽을 쌓지 않았으면 해요. 시작점이 같다는 생각으로 더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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