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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법
  • 유병욱 수습기자
  • 승인 2018.06.3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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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여행을 갔을 때 거치는 도시마다 건립된 추모관과 추모공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굳이 시간을 내면서까지 갔던 이유는 이웃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추모함으로써 사회가 따뜻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3주년을 맞이한 이번 현충일 행사는 19년 만에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됐다. 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수도권과 꽤 떨어진 지방에서 추념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2시간을 탄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광경은 현충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었다. 길었던 것은 사람으로 이뤄진 줄 뿐만이 아니었다. 현충원에 가기 위한 도로가 차들로 빼곡하게 들어선 진풍경 또한 볼 수 있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했다.

아직 그들 가슴 속에 사는 사람들

현충원에는 추념식에 참석하는 사람 외에도 그곳에 안장된 가족 혹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추념식이 끝난 뒤 현충원을 거닐면서 묘지를 찾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안장된 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간혹가다 묘지 앞에 물건이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묘지에는 생전에 애주가이셨는지 소주병에 컵을 엎어 놓은 묘지도 보였다. 또 어떤 묘지에는 커피를 즐겨 마셨는지 커피 믹스를 컵에 담아 묘지 옆에 두기도 했다. 한 묘지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인형이 담긴 상자가 있는가 하면 다른 묘지에는 그의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묘지에 붙어있기도 했다. 천안함 묘역에서 봤던 어느 한 묘지는 특히나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 묘지에는 코레일 직원들이 묘지의 주인을 기리기 위해 기증한 명예 사원증이 부착돼있었기 때문이다.

물건이 놓인 묘지가 있는가 하면 안장된 분과 교감을 하는 듯한 분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묘비에 손을 얹고 고인과 대화를 나누는 분도 계셨고 묘지에 놓인 꽃병을 정성스럽게 닦는 할머니도 계셨다. 또 묘지를 떠나기 싫은 사람들이 천막이나 우산을 이용해 그늘을 만들어 묘지 앞에 자리 잡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묘지를 찾아 달라던 할머니도 계셨다. 나조차도 걷기 힘든 무더운 날씨였지만 그분은 묘지를 찾아 현충원을 방문한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분들의 가슴속에는 아직 순직하신 분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그들

현충원의 여러 묘역을 둘러보면서 든 생각은 현충원에 안장돼있는 분들이 우리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충원에는 교사와 경찰 그리고 소방공무원 등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계시는 분들이 안장된 묘역이 존재한다. 그곳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가 순직하신 교사가 계신 가하면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시는 경찰과 소방공무원도 안장돼 있었다. 모두 우리가 어렵지 않게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분들이다.

의사상자 묘역을 찾아가 보면 이웃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의사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을 뜻한다. 그곳에는 바다에서 인명을 구조하다 사망하거나 강도로부터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이 안장돼있다. 또 자살시도자 구조 후, 한 생명을 살린 뒤 사망하신 분도 계신다. 어쩌면 그들은 생전에 우리와 스쳤을지도 모르는 인연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듯 그들은 우리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보훈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다

유가족과 친구들이 그들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그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간다. 실제로 현충일에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녀 보면 태극기가 게양된 가구를 드물게 발견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현충일을 단지 ‘빨간날’로만 인식하고 있다.

현재 위험을 감수하는 공무원에 대한 태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과연 우리가 그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화재를 진압하러 온 소방관에게 ‘왜 신발을 신고 들어오냐’며 삿대질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급대원을 폭행해 숨지게 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더욱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소방관들의 장비와 환경 문제는 사회가 과연 그들을 진정으로 존경하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자신의 직무가 아님에도 많은 의인이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우리는 현충일 하루만이라도 그들에게 존경을 표함으로써 헌신하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되새겨야 한다.

의인을 멀리 가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며 단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평생 그들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간다. 그것은 그들의 헌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존경 그리고 감사일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잊히지 않는다는 믿음은 다른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보훈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인 이유다.

유병욱 수습기자  ybw0313@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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