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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꿈에 집중해온 사람, 성공한 사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종렬'을 만나다
  • 이재하 기자
  • 승인 2014.03.3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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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자연을 사랑해 산에, 들에 놀던 그는 지금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비록 남들이 성공이라고 일컫는 인생은 아니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성공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다’ 바로 그가 해 준 말이다.

Q. 왜 기자를 그만뒀나
처음부터 10년 정도 근무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기자를 10년 정도 하고 나머지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사진가로서의 인생을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론 ‘오늘 그만둬야지, 내일 그만둬야지’하면서 결국 17년 동안 신문사에 있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다 새롭게 시작하게 된 일이 자연환경을 취재하는 일이었다.

Q. 자연환경을 취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넌 동물을 좋아하니까 생물학과를 가야겠다’였다. 친구들은 놀이터, 오락실에서 놀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나는 혼자 자연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여름엔 산에서 매미나, 하늘소를 잡고 물에선 미꾸라지나 송사리, 개구리도 잡고 놀며 자연을 즐겼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2, 3학년부터 4형제 중 나만 없어지면 산과 들로 놀다오겠거니 하셨다고 한다.

Q. 사진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중학교 때 꿈은 원래 기자였다. 하지만 여러 차례 사생대회, 교내 포스터 대회에 나가 상을 타다보니 스스로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미술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미술이라는 게 1학년 땐 취미생활로 할 수 있지만 2학년이 되면 입시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이지 않은가. 2학년이 되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결국 미대를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밤 늦게까지 미술반에 남아서 열심히 그림 그리곤 했다.

Q. 그래서 미대에 입학했나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미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미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는 생각이셨다. 옛날 어른들은 경영학과, 교육학과로 진학할 것을 권유하곤 했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반 활동을 그만하게 됐고 그 시기에 방황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뒤에 산이 있었는데 점심 먹고 산에 들어가 놀았다. 교실에 있는 내 책상이랑 의자를 화장실에 감춰 놓은 뒤 반장한테 ‘얘기하면 너 죽어’라고 겁주면 수업을 빠져도 선생님께 들킬 염려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 점심 먹고 뒷동산에 가서 꽃 보고 새 보고 들도 보고 잔디밭에 누워서 잠들곤 했다. 다른 짓은 안 하고 그냥 물가에 가서 하염없이 물 속을 보고는 괜히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서 시간 맞춰서 청소할 때 감춰뒀던 책상이랑 의자 돌려 놓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Q. 그 때 자신이 어떤 상황이였던 것 같나
그냥 다 싫었다. 공부도 싫고 친구들도 싫고.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던 친구들하고 어울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고 치고 다니는 문제아는 아니고, 모범생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다. 성적은 반 학생 55명 중 10등 안에 들었던 성적이 뒤에서 5등 안에 들었다. 하지만 인생이 바닥을 치면 그 때부턴 올라갈 일만 있지 않은가. ‘이래선 안 되겠다. 공부를 다시 해야겠구나’라는 다짐 후 3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 꿈이었던 기자가 되고 싶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Q. 기자를 꿈꾸게 된 이유가
어렸을 땐 단지 멋있어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외국 영화에 기자가 멋있는 역할로 많이 나왔는데 정의를 위해 사건을 파헤치고 다니는 것이 정말 멋있었다. 정의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기자를 꿈꾸게 됐다. 이렇게 중학교 때 철없을 때 생각했던 게 기자였고 고등학교 때 철들고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 게 미술이었다. 그런 와중에 미술을 못하게 되니까 방황을 하다가 그럼 기자의 꿈을 되찾고 다시 돌아온 거다.

Q. 공부할 때 그 꿈이 원동력이 됐을 것 같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더라. 고3 때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면, 마음만 먹으면 잘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잘 되진 않았다. 내신성적은 그대로 바닥이었다. 하지만 상관 않고 학력고사만 생각하고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참고 인내한 끝에 학력고사 340점 만점에 245점의 중상 등급의 성적으로 청주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Q. 대학교에서 의미 있는 시기가 있었나
1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보도사진 강의를 수강한 것이 내겐 큰 사건이었다. 사진을 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수업이 끝난 뒤 바로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께 카메라 사달라고 졸랐다. 사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타겠다고 거짓말했다. 결국은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미술과 언론 사이에서 헤매던 그는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사진이라는 것을 갖게 됐다. 그것은 당시 우리와 또래였던 그에게 30년이 지난 뒤에도 그 때의 젊음을 유지하게 해준 것이다.

Q. 왜 사진이 자신에게 크게 와 닿은 것 같나
미술에 대한 향수를 달래줬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그만 뒀던…. 나는 그 비싼 카메라로 주변을 찍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찍다보니 점점 더 사진에 빠져들게 되더라.

Q. 사진은 학과 수업을 통해 배운건가
학과수업은 보도사진이었다.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는데 2학년 2학기 때부터 과 암실 키를 받아서 학과 암실에서 먹고자고 생활했다. 현상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하는 것을 반복했지만 그런 경험들이 모두 내것이 됐다. ‘요령부득’이란 말이 있다. 열심히 부딪히고 무식하게 사진을 배웠다. 그냥 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사진에 미친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다. 사진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품고 나는 사진기자가 됐고 현재는 사진작가로서 살고 있다.

Q.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사진을 촬영한다는 게 목숨을 담보로 찍는 것은 아닐지라도 목숨을 걸 만큼 극한상황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게 나한텐 아름다운 고통이다. 고통을 겪고 원하는 사진을 얻었을 때의 그 쾌감, 성취감을 말하는 것이다. 7년간 자연이 주는 그런 즐거움에 빠져서 지내왔다.

Q. 촬영할 때 힘든 건 무엇인가
일단 촬영을 시작하면 화장실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뭘 먹질 못한다. 2박3일을 점심 한끼, 칼로리 발란스, 초콜렛으로 버티고 점심식사를 몽땅 먹고 바로 소화해서 배출한다. 오후 2-3시 쯤에 위장텐트에 들어가 저녁엔 칼로리 발란스 2개, 아침에도 똑같이. 10시-11시에 텐트 나와서 점심 때(2-3시 전) 밥을 먹은 뒤 반드시 소화시켜 화장실을 갔다오고 텐트로 돌아가는 거다. 사진을 찍을 기회는 해 질 때, 해 뜰 때이기 때문에 이 두 시간이 아니면 색감이 없어 죽은사진이 되기 때문에 사진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Q. 왜 생태사진 작업을 시작했나
사회에선 뉴스사진이 의미 있는 기록이었지만 자연에서 어떤 기록이 의미 있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 설명의 성격을 띄는 보도사진 습성에 젖어 있었지만 그 자체로의 느낌을 갖는 사진적인 사진 작업에 매달렸다.

Q. 작가 이종렬만의 사진이란
색감과 시점이다. 독특하단 말을 많이 들었다. 대상의 눈높이에서 촬영하는 ‘아이투아이’기법으로 촬영자로서가 아닌 그들 무리에 들어가는 것이다.또한 과거엔 야생동물에 주목했다면 지금은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생태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엔 멸종위기 동물을 기록하려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사는 주변환경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지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들이 사는 주변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Q.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대학 4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인데 그 기간 중에 무엇인가 하나에 미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고 최소한 그것에 1-2년 정도 미친 듯이 일을 해보라고. 내 대학 동기들 중 학교방송국, 산악동아리에서 정말 그 일에 빠져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있는데 지금은 MBC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DJ, 히말라야 원정대가 되는가 하면 유명한 산악인이 된 친구도 있다. 이렇듯 ‘무엇이든 미친 듯이 한’ 친구들은 무엇이든 결과물로 남아있더라.
다음으로는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을 해보길 바란다. 여행의 참맛은 혼자 갈 때 느껴지는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해외든 국내든 적은 돈으로 떠나보는 것이다. 나는 대학 3년 여름 당시 돈으로 6천원, 지금 돈으로 12만원 정도로 동해안에서 남해안까지 26박 27일을 여행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참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그런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경험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하는데 대신 나는 노력하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하려던 의지는 되게 강한 사람이다. 지금도 마찬가진데 신문사를 다니고, 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자연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인생을 살아온 것도 마찬가지고 지금 사무실에선 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하거나 책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은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낸다. 오랫동안 하는 일은 매너리즘에 빠져 사람이 늘어지고 생동감이 떨어지는데, 새로운 일을 하게되면 생동감을 준다.
나는 ‘40대에는 기자생활, 50대에는 사진가를, 60대부터는 CEO가 돼 볼 것이다’라는 계획으로 살아왔으며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여러분도 인생의 몇 년의 기간을 정해 어떤 일을 할지 구상하고 실천해 살아있는 느낌을 마음껏 느끼면서 살아가길 바란다.
무모한 것이 아니다. 인생을 계획하고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마라.

이재하 기자  a6729211@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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