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몸살 앓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논란 확산” 최근 한 언론매체에 등장한 기사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저 데자뷰(déjà-vu)가 아니라 몇 년 전에 읽었던 것의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기사가 친절하게 짚어주지 않는 전후 맥락과 지난 몇 년 간의 상황 변화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2005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역사교육 강화방안’과 그에 근거한 2007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역사과(歷史科) 교육과정 개정은 각기 상이한 성격의 정치권력이 유사하게 작동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2011년 ‘역사교육 강화방안’의 발표 전후에 국사편찬위원회는 교육과정의 개발, ‘교과서 집필기준과 편찬상의 유의점’ 개발, 감수, 검정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주관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유례없는 집중이었다. 또 2011년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에서 심각한 논란을 초래한 내용 중 하나는 현대사 단원의 집필기준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이었다. 원래 교육과정 개발진의 시안에는 없었지만 고시(告示) 직전에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해방 후 유지해온 표현을 독단적으로 밀어낸 반교육적 처사였다.

이 문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는 무엇이며 두 개념 사이의 대립이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둘째, 현실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교육의 숙명과 과제이다. 이 짧은 글에서는 첫 번째 문제에 집중할까 한다.

오늘날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은 민주주의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위험한 이념이었다. 18세기 말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분명하게, 20세기에 접어들어 정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즉 인민의 지배(dēmokratía)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흔히 근대 민주주의 발전의 이정표로 언급되는 13세기 초 영국의 대헌장, 17세기 말 영국의 명예혁명, 18세기 말 미국 혁명 같은 사건들은 인민의 지배와는 전혀 다른 전통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 획기적 사건들은 실상 “민주주의를 길들이는 과두정(寡頭政),” 달리 말해 헌법에 입각해 왕권과 민중의 요구를 제한하려는 유산층의 특권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서양의 여러 국가에서 선거권이 확대되고 대중적 선거정치가 전개되면서 민주주의가 새롭게 정의(定義)되어야 했을 때, 대중의 우매함과 변덕을 거리낌 없이 비난할 수 없게 된 지배층이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대중을 순응시키기 위해 택한 방식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초점은 대중의 능동적인 권력 행사(인민의 지배)로부터 입헌적 권리의 수동적인 향유로 바뀌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보통선거제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포용해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로 축소된 양상이 강했다.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낱말을 떠올릴 때 대중의 권력 행사가 아니라 언론ㆍ출판ㆍ집회의 자유, 사적 영역과 시민사회의 보호 등이 연상되는 것은 이런 흡수와 축소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2018년의 집필기준이 ‘민주주의’의 환원을 요구하자 그렇다면 자유를 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도 괜찮다는 것이냐고 묻는 학계 외부의 정치적ㆍ이념적 공세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에 대해 집필기준이 포괄적이어야 교과서 출판사들과 집필자들이 운신하는 폭이 그나마 넓어질 수 있다는 점, 역사 교과서 용어의 법적 정의와 정치적 타당성을 따지는 일보다 그것의 역사적 용례를 확인하고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와 어울리는지(예컨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19세기 말 이래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앞에 어떤 형용사가 많이 쓰였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를 고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역사교육의 방향이라는 점, 2018년의 조치가 2011년의 독단을 바로잡는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부디 이번 공세가 1987년까지 꽤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 공범자들이 펼치는 마지막 콘서트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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