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지 어언 3주가 지났다. 그때의 그 시간 그 느낌 그 감정을 회상하려니 초록과 나무가 잔상으로 떠오른다. “11월 초순 쯤 중간고사를 마치고 보낸 그 서른 여 시간은 잊지 못할 초록빛으로 기억 된다”

김예은 (사회·1) 학우와 떠난 여행이었다.

열한 번째 달의 네 번째 날 담양으로 떠났다. 수원에서 담양으로 가는 직행 버스가 없어 광주에서 갈아타고 이동해야했다. 8시 20분에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광주행 버스표가 매진돼 10시 30분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약 5시간을 쉴 틈 없이 달려 담양에 도착했다. 한적한 모습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활기차고 소란한 모습이었다.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담양 한정식을 먹기로 했다. 무려 2만 7천원이라는 거금의 한우 대통밥 정식은 대단했다. 한상을 빼곡히 채운 반찬들이 우리를 흥분시켰다. 그렇게 서로에게 낯선 이였던 우리들은 낯선 경험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책을 읽는 김예은 (사회·1)의 모습
책을 읽는 김예은 (사회·1)의 모습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 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관방제림은 제 366호로 지정돼 있는 천연기념물이자 3백여 년 전 홍수 피해를 막아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고자 조성했던 제방 숲이다. 그 옛날 백성을 지키고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한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동작 또는 행위를 일컫기에 나무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성을 지킨 나무들은 자신의 자리에 우뚝 서있는 최선의 행위를 했던 것이다. 한 자리에 깊게 뿌리내려 서 있는 나무가 백성들을 지켜줬다는 이야기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래서인지 숲길을 따라 걷는 동안 수백 년을 우뚝 서있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더욱 아름다웠다.

김 학우와 나는 숲 속을 걸었다. 숲 속 산책이 굉장한 일은 아니지만 바쁘게 살아온 도시 속의 일과에서는 평범한 일상도 아니었기에 더 없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후회 없을 만큼 걷고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숙소에서 못 다한 일정과 다음 일정을 정리해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우리는 편히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둘째 날의 하루는 조금 일찍 시작했다. 죽녹원 산책이 고요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관광객이 몰릴 시간을 피해 개장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대나무 사이에서 보낸 아침은 고즈넉함을 넘어 호적하기까지 했다. 죽녹원은 ‘대나무 숲으로 이뤄진 정원’이라는 뜻과 함께 ‘울창한 대숲과 대숲에서 댓잎이슬을 먹고 자라는 죽로차와의 만남’을 상징하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언제나 푸르르지만 계절마다 다른 느낌을 선사 한다. 봄에는 갓 자라나기 시작하는 죽순들로 연푸른 빛깔이 펼쳐지고 여름에는 밝은 선녹색으로 몸과 마음을 맑게 한다. 가을에는 잘 우거진 대숲이 하늘을 가려 세상을 푸른빛으로 채우고 겨울에는 내려앉은 하얀 눈에도 변치 않는 푸른 대나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중 우리는 죽녹원의 가을을 만났다. 본래 가을은 대부분 붉은 빛을 띠지만 우리는 녹색의 가을을 만끽했다. 그곳에는 오로지 대나무와 우리만이 있었다.

김 학우와 산책을 하며 나눈 대화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1박 2일 동안 김 학우와 나눈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이 “맞아”와 “나도”였으니 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옛날의 것과 나무를 좋아하는 것이 닮았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에게 낯선 존재였는데,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통점을 발견한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모습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모습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 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우리는 담양의 숨겨진 맛집인 갈비 전문 승일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독서를 계획했다. 행여나 수원으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못 맞출까 조마조마했지만 댓잎 아이스크림의 여운은 떨칠 수 없었다. 댓잎 아이스크림과 댓잎 찰 도넛을 원 없이 즐긴 후에야 택시를 타고 서둘러 이동했다. 메타세쿼이아 길과 입구를 함께하는 메타 프로방스에서 청포도 에이드와 키스링 빵을 사들고 길에 들어섰다. 또 다시 이어지는 산책과 대화였다. 다리가 아파올 때 즈음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하기로 했다. 김 학우는 노명우 교수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필자는 최갑수 여행 작가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이라는 책을 읽었다. 여행지에서 책을 펼쳐본 낯선 경험이었다. 담양에서의 모든 순간은 한결같이 나무와 함께 걷고 생각하며 이야기로 채워졌다. 마치 초록의 맛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족했다’

여행 중 책 한 권의 여유
여행 중 책 한 권의 여유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날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관방제림과 죽녹원 그리고 메타세쿼이아 길까지 담양에서 만난 나무는 고독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무를 보며 고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김 학우와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우리가 순간의 고독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한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인간관계 사이에서의 고뇌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보다 관계는 다양하게 넓어졌지만 우리의 혼란스러움은 가중됐다. 더 넓은 세계를 접하는 동시에 개인의 고독과 고뇌는 깊어졌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김 학우는 대학 입학이 개구리가 우물 속을 나온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가 우물 밖에서 어려움을 마주하며 깨달은 것은 자신이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어리숙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무지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마주했던 고독한 자신의 모습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담양여행은 그러한 김 학우 본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는 담양에서의 1박 2일 동안 자신을 찾았을까. 이에 그는 “모든 게 다 ‘나’였다”라는 대답을 남겼다.

필자는 이번 담양여행이 대수롭지 않았다. 이전에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장소이거니와 나에게는 여행이 아닌 취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모습의 담양은 어째서인지 낯설었다. 낯선 동행자와 함께하는 약간의 긴장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 학우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그에게 젖어들어 그의 고민을 함께했다. 이제야 그의 답변을 곱씹어 이해한다.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대상을 바로 마주하는 것이었다. 김 학우는 이제 과감히 본인을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고독한 자신의 모습까지도 인정할 것이다.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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