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론’ 인문계의 구십퍼센트는 론(논)다. ‘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인문·사회계열의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는 이미 만연한 표현으로 이공계열의 학생에 비해 취업에 난항을 겪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생겨난 자조적인 표현이다.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대외활동 ▲외국어 ▲학교성적 등 갖가지 스펙을 쌓으며 성실히 살아도 대한민국에서 그들이 걸은 길은 그야말로 죄송한 선택일 뿐이었다.

 

우리는 문송하고 있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취업하기 힘들다? 낮은 취업률은 비단 인문·사회계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인문·사회계열은 더 고달프다.

취업 알리미 2017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과생들의 평균 취업률이 약 70%에 다다르는 반면 문과생들의 평균 취업률은 42.1%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대학원생을 포함된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시장에서 이공계 채용 수요가 커지면서 인문·사회계열 학생의 취업난은 더 짙어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의 85%가 이공계 출신이었으며 SK의 경우도 70%가 이공계 전공자였다. 영업과 기획 그리고 경영지원 분야 등도 이왕이면 이공계를 선호 하고 있다. ‘팔아야 하는 상품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이공계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KB 국민카드는 상반기 채용에서 약 40%를 이공계 출신으로 채웠고 LG유플러스는 영업과 마케팅에서 이공계를 우대한다고 밝혔다. 기아 자동차도 영업과 경영지원에 기계·전기·전자 우대를 명시했다.

문송함은 취업후에도 계속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대졸자 첫 일자리 특성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8월과 2012년 2월 졸업한 인문·사회계열 졸업자 가운데 40.4%는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반면 공학계열 대졸자는 29.0%만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의 차이도 컸다. 인문·사회계열 졸업자의 첫 일자리 월평균 임금은 ▲비정규직 139만원 ▲정규직 182만원인 것에 비해 공학계열은 ▲비정규직 153만원 ▲정규직 207만원으로 더 높았다. 이공계열에서 인문·사회계열보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임금수준이 높은 산업에 취업한 비중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었다.

 

왜 일까

취업에 있어 인문·사회계열은 딜레마를 겪는다. 이공계는 전공과 직무 영역이 어느정도 유사하지만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 직무 영역이 일치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업체의 인사담당자들은 전공지식 보다도 ▲공감하는 역량 ▲소통하는 역량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 ▲창의적 역량 등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당장은 직군에 바로 투입되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모순이 있다. 뛰어난 직무 역량을 가졌다면 훈련을 거쳐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에 부합할테지만 대다수의 기업들은 바로 데려다 쓸 수 있는 인력을 채용해 직원들을 소모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국가·사회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선진국가들은 복지시스템이 잘되어 있어 직종에 상관없이 먹고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 이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중요시여기는 그들의 가치관에도 반영된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부터 안정적인 일자리를 추구했다. 불안한 복지와 국가 시스템 속에서 안전과 안정을 갈망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취업의 문턱에서 겪는 어려움과 문송함은 우리 곁의,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영업관리직 취업을 희망하는 최 학우 (국문·4)는 지난 1학기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졸업유예를 결정했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최 학우는 문송에 대해 자괴감보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비교적 실용적인 공부를 하는 이공계열 학생들에 비해 전공 과목을 취업시장에서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문과 전공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 오지 않는다며 씁쓸해 했다. 당장 대입에서 인문·사회계열의 모집인원을 축소하고 순수학문을 소홀히 하는 사회의 모습에 속상해한 것이다. 이어 그는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위해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고 순수학문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며 개인들도 취업 현장에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출판 계열 취업을 준비하는 백지윤 학우 (국문·4)도 있다. 3학년 2학기에 취업 준비를 시작해 4학년 1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은 그는 자격증(▲컴퓨터 활용능력 ▲한국사 ▲한국어)과 ▲스피킹 ▲토익 등의 어학능력 그리고 대외활동을 위주로 준비했다. 또한 본인의 특수한 취업 분야를 위해 독서이력을 만들고 블로그 활동을 하기도 했다. 백 학우는 “최근 사회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며 “이 시기에 다양한 인문학적 시도들을 해보는 것이 본인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물론 사회적인 대책이 필요하지만 자신이 하고픈 진로가 명확하다면 남들과 차별화된 인문학적 소양을 부각시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삼성그릅 인사 업무 33년(면접관 20년) 경력을 가진 경영대학 초빙교수 김병주 교수는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서 ▲공기업 ▲공무원 준비 ▲대기업 ▲중견기업 ▲창업 ▲해외 취업 등의 여러 가지 경로 중에 일찍 자신의 진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확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을 위해 맹목적으로 스펙을 쌓으려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일찍 진로를 설정해놓고 그에 필요한 경험들을 가치있게 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게는

 

문과라서 죄송하지 않아도 되는 취업 세계는 존재했다. 유통·식품·패션·뷰티 업종이 바로 그들이다. 실제로 대부분이 직군에 전공 제한을 두지 않은 열린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이 업종들은 어느새 문과생들에게 취업의 구세주 같은 기업으로까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현대 백화점그룹은 문과생들을 취업시장에서 대폭 소화하는 대표 기업 가운데 하나로 캠퍼스 현장 면접과 학교 추천 전형 외 ‘스펙타파 오디션’이라는 블라인드 전형을 도입해 인재를 선발한다. 취업준비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알려진 로레알코리아도 본사 직원 대다수가 인문·상경·예체능계열 출신이다. 블라인드 면접을 실시하는 대신, 서류 전형을 단순 이력서가 아닌 유튜브 비디오 방식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농심의 경우 지난해까지 최종 채용자 가운데 문과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60%에 이르렀고 동원그룹도 50%가량을 문과 출신으로 뽑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 기회의 문은 열려 있었다.

얼마 전 백 학우가 취업을 희망하던 출판사에 취직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려줬다. 신입 직원인터라 많은 잡무와 낯선 출판 프로세스가 어렵지만 그녀는 즐겁다. 전공과 맞닿아 있는 직업이기도 하거니와 인문분야에 주력하는 출판사인 점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난 5월 종영한 MBC 수목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의 주인공은 젊은이 은호원이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청춘이다. 3개월 계약직으로 가구 회사에 입사한 그녀는 100번이나 입사 시험에서 떨어지는 슬픔을 감내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장학금 받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먹고 살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던 흔한 대학생인 그녀는 스펙이라고도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젊은이다. 하지만 극중 은호원의 전공은 ‘기업에 취직하기 어렵다는 국문학과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문송은 비단 취업 전선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취업에 어렵다는 인식은 대학 진로 설정을 비롯한 교육의 방향을 바꾸고 공무원 시험을 오랜 기간 준비하는 공시생을 늘려 놓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학교의 특정 학과들에 한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에 고착될 염려를 들게 한다.

우리는 문과 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부끄러울 것 없는 전공이며 과거와 다를 것도 없는 시대다. 어쩌면 문송에 관해 시끄럽게 전달하는 언론은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주눅들게 만드는 것이며 취업의 문도 계속해서 좁혔다. 우리들 사이에서 제 2의 백 학우와 제 2의 은호원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감내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는 인문·사회계열로써 행복을 위해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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