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이라는 인문대학 기초과목에서 학생들과 함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작품 속 미래 사회에서 인간은 엄격한 통제 속에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지며 그에 따르는 직업이 주어진다. 어릴 때부터 받은 수면교육을 통해 사람들은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으며 대부분의 욕망은 그 즉시 충족된다. 간혹 감정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부작용이 없는 ‘소마’라는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해결한다. ‘공유 균등 안정’을 이념으로 내세우는 미래 사회를 그린 <멋진 신세계>는 일반적으로 ‘기계 문명이 가져다줄 인간의 비극을 경고한 디스토피아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학생들에게 <작품 속 미래 사회에서 현재로 가져오고 싶은 것과 절대 가져오면 안 될 것>이라는 주제로 감상문을 쓰게 했는데, 절반가량의 학생들이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지고 직업이 정해지는 제도를 우리 사회로 도입하고 싶다고 적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취업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고생하는 일은 없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낮은 계급에 속한다 하더라도 일종의 세뇌 교육에 의해 애초부터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조금 더 나은 직장, 조금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향해 부대끼며 경쟁해야하는 현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차라리 누군가 나에게 신분과 직업을 정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한편으로는 버젓한 직장과 직업을 갖는 것을 인생(과 대학)의 최대 목표로 만들어버린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지식채널e>를 제작했던 김진혁PD의 칼럼에서 요즘 20대는 꿈과 직업을 동일시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의 꿈을 물으면 기자라거나 삼성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년에게 “그럼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거야”라고 대뜸 묻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꿈은 꿈대로 직업은 직업대로 소중한 것이다. 꿈과 직업은 목표와 이유가 다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둘의 조화를 통해 자아의 실현을 지향한다. 꿈이 꼭 직업과 일치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것이 또 가장 바람직한 삶도 아니다. 사실은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꿈은 다른 길을 통해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직업을 선택하고 직장을 구하는 어려움이 학생들에게 꿈을 꿀 자유마저 포기하게 만든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직업과 직장을 곧 꿈으로 간주하는, 그래서 직업을 얻는 순간 꿈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취업을 준비하는 젋은이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드는 위험한 태도이다. <상상과 현실>이라는 강의 제목이 상상과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이란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인 것처럼 현실 속 우리의 삶은 내 꿈과 나의 생업 사이 어딘가에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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