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인류는 기록을 남기고 의사를 전달 하기 위한 매개체로 돌, 동물의 뼈, 대나무판, 도자기 조각, 점토 판 등을 사용했다. 그러다 이집트 나일 강변에서 자라는 갈대 모 양의 식물 속을 분리해 엮은 후 건조시키면 얇은 면이 된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종이(paper)의 기원이 된 파피루 스(papyrus)이다. 중국에서 현대적인 종이에 가까운 한지가 발 명된 이후로는 인류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의 양이 빠르게 늘어 났는데 이는 얇고 가벼운 종이를 새로운 기록 매체로 사용하면 서 책을 만들어 작은 공간에 많은 정보를 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이의 발명은 인류가 모은 정보를 집적하여 전파하고 계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매일같이 생성되는 수많은 양의 정보를 집 적, 전파, 계승하는데 사용되는 주요 매개체는 무엇일까? 스마트 폰과 컴퓨터와 같은 각종 전자기기의 힘으로 우리는 현재 그 어 느 때보다 정보를 취득하고 전파하는 것이 손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전자기기들이 많은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저장하고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 산 업의 발전과 연관이 깊다. 메모리 반도체는 논리연산을 할 수 있 는 트랜지스터 (transistor)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트랜지스터란 trans와 resistor의 합성어로 저항을 임의로 변화시킬 수 있는 소자라는 뜻이다. 저항값의 변화를 통해 (1→높은 저항)과 (0→ 낮은 저항)이라는 이진수에 정보를 저장하거나 연산을 할 수 있 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의하면 트랜지스터의 집적도 는 일정 기간마다 2배로 증가하는데 이에 따라 컴퓨터의 정보 처리 속도 또한 같은 기간 2배 향상된다. 지금까지 실리콘을 재 료로 하는 공정 기술의 발달로 소자의 집적도가 비약적인 향상 을 이루어왔지만 현재는 나노미터(10-9m) 이하로 내려가는 미세 소자 제작의 어려움 때문에 무어의 법칙 또한 한계에 가까운 상황이다.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집적 기술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높아졌을 때를 대비해 몇가지 대안이 등장했다. 기존 트랜지스터의 ‘1’과 ‘0’이라는 이진수를 이용한 정보 처리 기술을 넘어 ‘1’과 ‘0’의 중첩이라는 양자 현상을 이용해 정보량 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는 양자 컴퓨터가 그 한가지 예이 다. 또 다른 대안은 실리콘을 대체할 신물질을 찾아나서는 것이 다. 최근 발견된 2차원 나노물질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노벨상을 받은 안드레 가임과 노보셀로프는 2차원 물질 인 그래핀을 최초로 발견한 공로로 상을 수상했다. 그래핀 외에 도 반도체인 다른 2차원 나노물질들이 2010년 이후에 발견되기 시작하여 기존 소자보다 얇고 심지어 원자 한 겹의 두께로 존재 하는 전자 소자를 만드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렇듯 얇은 두께로 존재하는 반도체를 활용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먼저 같은 기능을 더 얇은 두께로 할 수 있다면 소자 를 좀 더 소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종이를 겹겹이 쌓아 책을 만들듯이 원자 한 겹 두께의 서로 다른 2차원 물질을 수직 으로 쌓으면 다양한 기능을 한번에 처리하는 새로운 개념의 소 자가 개발될 수도 있다. 이들 물질을 이루는 전자가 2차원 공간 에 속박되기 때문에 생기는 양자 현상을 활용하면 미래 양자 컴 퓨터의 새로운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 하기 위해 갈 길이 멀지만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신물질이라는 미지의 분야로 뛰어들고 있다. 

 종이의 발명으로 책이 만들어진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얇은 반도체의 발견이 가져올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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