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존중받지는 않는다. 가령 유명세나 이미지 등 대중이 만들어 낸 ‘정당한’ 이유를 토대로 누군가의 상처는 가십의 소재가 됐다. 상처는 그저 이야깃거리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한없이 가벼워져 갔다. 사람들에 의해 가볍게 여겨진 상처는 약점이 됐고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소비됐다.미란다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뛰어난 편집장이다. 하지만 그녀는 독설과 폭언을 일삼는 패션계의 마녀이며 인간적인 평판은 바닥이다. 사람들은 이를 이유로 삼아 그녀의 논란을 즐겼다. 세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
노력하는 청춘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유발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밤낮 없이 입시나 취업 준비에 열중하는 청년들의 모습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며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당사자인 청년들이 원해서 했다기보다는 대학에 진학해 취업에 성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떠밀린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는 가끔 우리에게 수많은 압박감을 부여한다. 심지어 누군가는 사회가 정한 선에 부합하지 못한 본인의 모습에 비관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사바나는 이런 사회가 부여하는 “해야만 한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
당신은 비밀을 갖고 있는가? 예상해 보자면 아마 있을 것이다. 차마 밝힐 수 없는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불필요한 소문을 막기 위해 자신만의 비밀을 갖기도 한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선 약간의 거짓말도 동원된다. 도덕적인 행위로 보이진 않지만 때론 비밀을 갖는 게 나은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영화 ‘완벽한 타인’의 40년 지기 친구들은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다. 하지만 서로에겐 차마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투자에 실패한 일부터 친구 무리 중 한 명을 빼고 예약한 골프 라운딩 예약. 매일 밤 10시면 받는 외간 여성의 가슴 사진과
1987년 6월 10일 오후 여섯 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스무날의 항쟁에서 백골단은 사과탄과 최루탄을 난사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격렬한 대치 과정에서 잔인한 군부 독재를 향한 시민의 분노는 더욱 폭발했다. 넥타이를 맨 시민은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하던 전경에 맞서 박수를 치며 비폭력을 외쳤다. 전경에게 장미꽃을 주며 학생과 전경 모두 우리의 아들딸이므로 최루탄을 쏘지 말 것을 부탁하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발견됐다.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던 시민과 시민의 마음이
‘어린이를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해 그들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라. 어린이를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해 그들에 대한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놀기에 족할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위 글은 방정환 선생과 김기전 선생이 주도한 소년운동 선언의 일부다. 세 문장을 통해 어린이를 노동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놀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해방’을 중심으로 어린이 운동이 펼쳐지자 일제는 어린이날 행사를 방해했다. 심지어 1937년에는 소년운동협회를 해산시키며 우리나라의 어린이 해방을 막아 섰다. 그 이유
화려한 조명 아래 수많은 팬의 환호를 받는 연예인을 우리는 이상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연예인들의 자살은 화려함에 감춰진 그들의 어둠을 부각한다. 우리는 매 순간 양가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행복의 이면에는 불행이 존재하고 빛은 어둠의 뒤에서 찾아온다. 우리는 이런 양극단의 단어 사이에서 시소를 타듯 살아간다.진진의 이모도 그랬다.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여유롭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그녀의 삶은 누구나 이상적으로 바라볼 만했다. 특히 시장바닥에서 내복을 팔며 하루하루 삶을 이어 나가기 급급한 쌍둥이 언니인 진진의 엄마와
최근 각종 매체에서 소위 ‘정의 구현’이라 칭하는 사적제재를 다룬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가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유튜브 등 각종 SNS에 속칭 ‘참교육’ 콘텐츠 또한 무수히 업로드되고 있다. 이들 모두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악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사적제재를 담은 콘텐츠는 통쾌함을 선사하며 대중을 열광케 한다.대중이 사적제재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 사법 체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법치국가에서 형벌을 부과하고 집행할 권한은 피해자가 아닌 국가에
심장병에 걸린 목수 다니엘은 손을 머리 위로 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질병 급여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요양보호사가 필요했던 현실의 경증 지체 장애 노인 조형섭 씨는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등급 신청을 거절당했다. 일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유에도 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디지털 소외 계층인 다니엘에게 온라인 신청 절차는 낯설기만 하다. 굶어 죽기 전 항고 재판일을 확정해 달라는 다니엘의 요구에도 경찰은 그를 체포한다. 노동의 의무를 다해온 다니엘은 제도에 의해 점차 복지로부터 밀려난다. 석유풍로 공
1990년 4월 파업 도중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수세에 몰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원들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이렇게 외쳤다. “골리앗 위에 있는 우리 전원은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서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들의 투쟁은 5월 전국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이때 가두시위에 최루탄이 날아들고 전철역이 점거됐다. 하지만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았고 박수로 호응했다. 82m 고공에서의 극한 투쟁은 전국총파업의 발단이 됐고 민생 파탄에 신음하던 국민에게 울림을 줬다. 그렇게 일개 노동조합의 파업은 ‘골리앗 투쟁’이라 이름 붙여졌고 1990년 노동운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 빠른 토끼가 압도적으로 앞서자 토끼는 방심하며 중간에 잠을 잔다. 하지만 거북이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기어가 토끼를 제치고 승리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게으른 토끼가 아닌 성실한 거북이가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신영복은 이를 비판한다. “거북이를 얕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1등을 한 거북이도 나쁘다”며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는 거북이도 토끼의 자세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신영복은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는 더불어 삶을 제안한다. 하
“우리 모두 100% 뒈진다잖아요!” 혜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과학자 케이트가 간절한 마음으로 외친 말이다. 이때라도 핵미사일로 혜성의 궤도를 변경시켰다면 지구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혜성 충돌이란 사안을 정치적 의도로 사용한 시점부터 모든 일은 완전히 틀어졌다.대통령 재니 올린은 국민들에게 닥친 위험을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정치적인 ‘키’로 사용했다. 영화 속 그녀는 중간선거에 정신이 팔렸고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묵살했다. 그러나 스캔들이 터지고 재선에 비상등이 켜지자 혜성 충
그 사람에게 친절히 보였을까. 말실수를 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스스로 검사하곤 한다. 가족은 거의 모든 검사에서 자유로운 사이다. 대부분 가족을 가장 편한 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편했기에 서로에게 무신경했고 말투는 무뚝뚝하게 변해갔다.책의 주인공 ‘옥미’도 그렇다. 그녀의 남편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일한 가족인 딸과는 왕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멀어질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옥미는 딸이 키우던 닭을 허락 없이 다른 곳으로 보냈고 딸에게 피곤하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기도 했다. 결혼 후 거의
1908년 3월 8일 1만5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여성 참정권을 외치며 뉴욕 거리를 행진했다. 이후 UN은 이를 기념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하게 됐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17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첫 문장이다. 하지만 그 인간의 범주에 여성은 제외됐다. 여성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여성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고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없었다. 이에 분개한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루비의 노래가 시작되며 오디오가 잦아들고 정적만이 남는다. 카메라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루비의 모습과 감동하는 청중의 모습을 비춘다. 하지만 루비 가족은 딸의 노래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관객은 고요함이 주는 이질감에 직면한다.영화 ‘코다’의 주인공 루비는 농인인 가족 사이 중 유일한 청인이다. 그녀의 가족의 언어는 수어다. 그들은 수어로도 농담을 건네는 등 편안하게 소통한다. 카메라는 보통의 가족과 다름없는 그들의 모습을 비춘다. 합창단에 들어가고 싶었던 루비는 노래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고 가수를 꿈꾸지만 가족은 그녀의 노래를 들을
최근 ‘더 글로리’나 ‘모범택시’와 같이 복수를 다루는 콘텐츠가 흥행하고 있다. 대중은 용서로는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으며 복수만이 피해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우아한 거짓말’은 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렇다면 과연 책 속에서 가해자를 용서한 피해자는 구원받았을까. 우아한 거짓말은 밝고 착했던 막내딸 천지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시작한다. 엄마와 언니 만지는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믿음 아래 가려져 있던 천지의 아픔을 알게 된다. 천지는 목을 맬 때 사용했던 줄과 같은 붉은 색의 털
1997년 2월 22일 로즐린 연구소에서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을 발표했다. 세상은 체세포 이용 포유동물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상식이 깨졌다는 점에 크게 주목했다. 미숙한 단계의 배아세포로 진행됐던 이전의 생명 복제에서 나아가 성인 양의 체세포에서 새로운 배아세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돌리의 탄생을 위해 2백77마리에 달하는 양들이 희생됐고 돌리조차도 만 6년 7개월 만에 진행성 폐질환으로 안락사됐다는 사실은 쉽게 잊혀졌다. 돌리는 품질 좋은 식용 가축을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가운데에서 탄생했다. 돌리 이후 생명복
딸은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든 내막을 알게 된 후 딸은 어머니의 소원대로 입국 금지가 된 북한에 어머니의 유골을 묻을 언젠가를 그려본다.‘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어머니는 제주도 4.3사건의 생존자다. 일제강점기와 4.3사건으로 인해 진정한 고향을 잃어 가본 적 없는 북한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 그 후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활동을 시작해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딸을 제외한 세 아들을 모두 북으로 보낸다. 하지만 클래식을 즐겨 듣던 장남은 북한에서 음악을 뺏겨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평생을 밤낮없
집으로 들어가는 길. 현관문을 지나 다가간 엘리베이터 앞에는 몇 층에 사는지 모르는 누군가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와의 어색한 눈맞춤 뒤에 정적만이 흐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를 따라가 각자의 층수를 누른 뒤 공허한 침묵 속에서 괜스레 핸드폰을 켜 시간을 본다. 엘리베이터에서 쫓기듯 내려 들어간 집에서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만을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타인의 방’은 단절된 사회 속 고독이라는 방 안에 갇힌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간 속에서 이웃과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한 ‘그’는 아무도
1898년 12월 26일 퀴리 부인이 ‘라듐’을 발견했다. 라듐은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는 새로운 원소로 주목받았고 몸에 좋다고 여겨졌다. 라듐을 이용한 치료부터 라듐 초콜릿 그리고 라듐 생수에 이르기까지 라듐의 사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그러나 라듐은 빛 좋은 개살구였고 이를 가까이한 사람들은 방사선 피폭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라듐의 위험성을 널리 알린 이들은 일명 ‘라듐걸스’다. ‘라듐걸스’는 1917년 전후로 ‘U.S. radium corporation’의 공장에서 도색 작업 중 피폭 당한 여성 노동자들을 의미한다. 공
1999년 11월 1일 대우그룹이 해체됐다. 부산의 소규모 봉제 업체로 시작한 대우그룹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우중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하에 수십 년이 흐른 후 29개의 계열사를 지닌 재계 3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이처럼 몸집을 불려가던 대우그룹이 해체된 배경에는 IMF 금융위기 속 김 회장의 결정이 있었다. 금융위기 속에서 삼성전자는 자산매각과 인력감축 등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는 등의 구조조정 전략을 취했다. 반면 대우그룹은 ‘세계경영’ 전략을 택했다. 만성적 적자와 부채에도 외려 은행으로부터 차입금을 늘려 투자를